1979년 10월, 유신 독재 정권의 말기에 이르렀던 박정희 시대는 부마항쟁이라는 중요한 사건으로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박정희는 부산과 마산에서의 시위를 강경 진압하기 위해 계엄령을 선포하고, 발포 명령까지 내리는 결정을 합니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인물이 등장합니다. 바로 중앙정보부장이었던 김재규입니다.
1. 10·26 사태는 왜 일어났는가? 유신 독재의 끝, 박정희의 말로
1979년 10월, 유신 체제에 저항하기 위해 일어난 부마항쟁은 당시 박정희 정권을 크게 위협했습니다. 박정희는 강경 진압을 지시하며, 차지철의 조언을 받아들여 계엄령과 발포 명령까지 승인합니다.
그러나 이 결정을 우려한 김재규는 유혈사태를 막고자 박정희를 암살하는 극단적 선택을 합니다. 바로 이것이 우리가 아는 10·26 사태입니다. 이후 박정희의 죽음으로 권력의 공백이 생겼고, 전두환을 중심으로 한 신군부는 12·12 군사반란을 통해 권력을 잡게 됩니다.
2. 전두환의 집권 시나리오와 광주 학살의 비극
12·12 군사 반란으로 실권을 잡은 전두환은 대통령이 되기 위해 시나리오를 작성합니다. 우선 반공 이데올로기를 자극해 한국 내 빨갱이 세력들이 존재한다고 선동합니다. 이후 이 빨갱이들이 광주에 숨어들었다고 합니다. 신군부의 독재를 타도하기 위해 민주적 항쟁을 펼치던 광주의 사람들을 빨갱이로 규정하여 그들을 학살할 준비를 하였습니다.
"내가 진압하겠다."
전두환은 학살을 통해 "대한민국을 공산주의로부터 지켜냈다"는 이미지를 심었고, 자신이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는 논리를 강화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시나리오 속에서 광주는 필연적으로 희생될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습니다.
일부 사람들은 아직도 이렇게 주장합니다.
"광주 시민들이 먼저 무기고를 탈취해 스스로 무장했고, 군인들에게 공격을 가했잖아. 결국 이를 진압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광주사태'가 벌어진 거 아닌가?"
"그러니까 5·18은 폭동이지"
하지만 전두환의 시나리오 속에는 이미 광주가 들어있었습니다. 즉 애당초 일어날 일이었으며 전두환의 시나리오대로 반드시 일어나야만 했던 일인 것이죠.
3. 만약 김재규가 박정희를 쏘지 않았다면?
만약 김재규가 박정희를 암살하지 않았다면 역사는 어떻게 흘러갔을까요? 박정희가 계속 권력을 유지했다면, 부마항쟁은 군대 투입으로 강경 진압되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희생은 광주가 아니라 부산과 마산에서 일어났을 것입니다.
4. 결론: 우리는 무엇을 기억하고 반성해야 하는가?
그렇다면 부산·마산 사람들이 광주 사람들에게, 그리고 경상도 사람들이 전라도 사람들에게 역사적 빚을 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우리는 왜 그토록 경상도와 전라도 간의 지역 갈등을 겪어야 했을까요? 이러한 갈등은 과연 필연적이었을까요?
오히려 이러한 분열은 정치적 이득을 취하려는 특정 세력에 의해 조장된 것은 아니었을까요? 그 결과, 우리는 서로를 미워하며 자신들조차도 희생해온 것은 아닐까요?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우리가 정말 싫어서 미워한 걸까요, 아니면 누군가에 의해 그렇게 믿게 된 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