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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Hermes/사회 해석

자유민주주의: 이념은 어떻게 비상계엄을 낳는가?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자유민주주의를 전면에 내세웠다.

이는박정희전두환 정권에서도 사용되었던 표현으로, 민주주의와 자유의 결합을 강조하며 공산 세력에 대한 견제와 정권의 정당성을 공고히 하는 수단 으로 사용되었다. 하지만 과연 자유민주주의라는 개념은 어떤 역사적 맥락에서 사용되어 왔는가?

 

얼마 전 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를 감명 깊게 읽었다. 5·18 광주 민주화 운동과 전두환의 비상계엄을 읽었는데 그게 2024년에 다시 일어났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책의 내용과 현실을 구분 못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었다.
 

 

1. 비상계엄 선포 담화문, 해제 담화문

  • 저는 어젯밤 11시를 기해 국가의 본질적 기능을 마비시키고 자유민주주의 헌정 질서를 붕괴시키려는 반국가 세력에 맞서 결연한 구국의 의지로 비상계엄을 선포하였습니다.

 

  • 이번 조치로 인해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드린 점 깊이 사과드리며, 앞으로도 자유민주주의와 헌정 질서를 수호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비상계엄 선포하는 윤석열 대통령


 
 

2. 민주주의의 의미

담화문에서 보다시피 윤석열 대통령은 자유민주주의라는 말을 핵심으로 사용하였다.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고 종북 세력과 반국가세력을 척결하겠다는 것이 비상계엄의 배경이다.
 
자유민주주의는 자유 + 민주주의 이 두 가지를 합친 말이다. 본래 민주주의의 의미는 무엇일까? 

 

민주주의(Democracy)는 그리스어 데모스(demos, 민중) 크라티아(kratia, 권력)에서 유래하며, "민중의 권력" 또는 "민중에 의한 지배"를 뜻한다.

 

즉 민중이 권력을 장악한 상태인 것이다. 한편으로 보면 정치권력을 민중이 장악하고 다수결로 의사결정이 이루어지는 상태라고도 볼 수 있겠다.
 

그러니까 민주주의라는 말에는 애초에 "자유"라는 개념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

 
하지만 우리는 일상적으로 민주주의와 자유를 결합시키곤 한다. 독재국가나 공산주의에 비해 민주주의가 훨씬 더 자유스러운 정치체제라고 받아들인다. 민주주의라는 말에는 "자유"의 개념이 없음에도 그렇게 받아들이는 이유가 무엇일까?
 
 
 

 

3. 민주주의와 자유의 결합 배경

 고대 그리스를 제외하고(시민과 노예가 여전히 나뉘었다는 점에서), 대부분의 나라에서 민주주의는 자유의 상징으로 등장하였다.
 
근대 시민혁명 이후 많은 서양 국가들의 왕정이 무너졌다. 이후에 민주정치가 세계 전역으로 확산되었다. 이처럼 국민들이 투쟁을 통해 권력을 장악했고 자연스럽게 그 국민들에 의한 민주주의가 실현되었기에 민주주의는 보다 자유로운 정치체제로 받아들여졌다.
 
자유의 측면에서 볼 때, 왕정은 오로지 국왕만이 자유롭다. 귀족정은 소수의 귀족만이 자유롭고, 민주정은 다수의 국민들이 자유롭다. 따라서 "자유의 양" 측면에서 봤을 때에도 민주주의는 자유와 결합된다.
 
이처럼 민주주의의 본래적 의미 속에 "자유"라는 개념이 없음에도, 민주주의가 자유와 결합한 것이다.
 
 

4. 공산·사회주의 국가의 민주주의 사용

비민주주의 국가들이 민주주의 이름을 사용하는 경우가 있을까? 

 
우선 중국이 있겠다. 중국은 중화인민공화국이라는 뜻이다. 민주주의라는 말이 직접 등장하지는 않지만 인민공화국이라는 말 자체가 인민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것이다.
 
물론 공화정은 민주정과 동일한 뜻은 아니다. 공화정은 왕이 없는 정치 체제를 폭넓게 이르는 말이다. 그러니까 공화정이 민주정보다는 훨씬 더 넓은 개념인 것이다. 중국도 형식적으로는 왕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공화국이라는 말은 성립한다.
 
또 어떤 국가들이 있을까?
 
모두가 알고 있듯 북한이 있다. 북한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는 이름을 사용한다. 여기서는 민주주의가 직접 들어가 있다. 
 
이처럼 민주주의의 이름을 공산 국가나 독재 국가가 차용하여 쓰는 경우가 있다. 공산민주주의, 인민민주주의, 사회민주주의 같이 말이다. 
 
 
 
 

5. 자유민주주의

자유민주라는 말은 1972년 박정희의 유신헌법으로부터 유래하였다. 물론 일상적으로도 얼마든지 사용할 수 있는 말이지만 공식석상에 대두된 것은 이때쯤이다. 박정희 이후 전두환 역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라는 말을 자주 사용하였다. 
 
공산민주주의, 사회민주주의, 인민민주주의라는 말에 대한 대항마로써 공산 세력을 척결하고 공산주의가 아닌 진짜 자유민주주의를 주장하고자 말이다.
 
전두환 이후 자유민주주의의 결합은 민주화 과정 속에서 다소 사그라졌다가, 이명박박근혜 정권에 이르러 다시 강조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현재 윤석열 대통령 시기에는 역사 교과서에 자유민주주의라는 표현이 공식적으로 사용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의문을 제기한다. "자유민주주의라는 말이 나쁜 말이냐?" 그럼 "인민민주주의 할 거냐?"라고 말이다.
 
역사적 과정에서 민주주의라는 말속에 이미 자유라는 개념이 녹아들어 가 있어도 "자유"의 개념을 더 강조하기 위해 자유민주주의라고 불러도 이상할 건 없다.

 

하지만 그것이 사용된 역사적 맥락을 살펴보면, 공산세력을 견제하고 자신의 정치력을 공고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었다.
 
자유민주주의를 강조하는 것은 북한과 이에 상응하는 공산세력을 견제하기 위함이었다. 그것에 그치지 않고 자신의 세력을 유지하는 도구로써 사용되었다. 따라서 민주당을 공산세력으로 규정하여 공산세력을 척결하는 표어로 자유민주주의가 사용된 것이다.
 
자유민주주의박정희, 전두환, 윤석열에 이르러 반공 적개심을 강조하여 자신의 행동에 정당한 명분이 있는 것처럼 꾸며주는 도구로 사용된 것이다.

박정희 전두환 윤석열

 
 

영국을 신사의 나라라고 한다. 하지만 세계사를 공부한 사람들은 모두 알 듯이 가장 신사답지 못한 국가가 영국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에게 없는 것을 강조하는 습관이 있다.
 
자유민주주의를 얘기하며 자유를 전면에 내세우고 강조하는 사람들을 면면이 살펴보면 가장 자유에서 거리가 멀었던 자들이었다. 
 
윤석열 대통령도 자유민주주의는 말로, 정치적 정적들을 제거한 후 권력을 이어나가고자 비상계엄을 선포한 것이다.
자유민주주의라는 이념이 비상계엄을 낳은 것이다.
 
 

 

내년부터 실릴 역사 교과서 내용

 
 

 

내년부터 학생들이 배우게 될 역사 교과서에는 자유민주주의라는 말이 실린다.
 

활자는 잘못이 없다. 다만 역사 교과서에 새긴 자유민주주의라는 말은 비상계엄과 쿠데타의 흔적이 진하게 남을 것이다.